기후재난은... 이제부터 시작

"다들 안전하신가요?"

지난 일주일간, 기록적인 폭우가 대한민국을 강타했습니다.

8일 수도권의 집중호우를 시작으로, 충남 등 전국 곳곳에 막대한 폭우가 쏟아져 내리면서 수많은 이들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현재까지 집계된 통계를 살펴보면, 14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전국의 사망자는 14명, 실종자는 6명, 부상자는 26명입니다. 주택 침수 등으로 발생한 이재민의 수는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1901명이고, 이들 가운데 아직도 1498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해 우려로 일시 대피한 사람도 5589명에 달합니다. 여기에 각종 시설물과 차량 침수 등으로 인해 발생한 재산 피해와 직·간접적인 사회적 비용을 더하면 피해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가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같은 상황은 반복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후변화 적응(Climate change adaptation)'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는 '이상' 기후가 아니다

이번에 수도권을 강타한 시간당 116mm의 비는 150년 빈도로 발생하는 큰 비였습니다. 그러나 강남역 침수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물인 '반포천 유역분리터널'은 30년 빈도의 폭우(시간당 95mm)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관리하는 치수시설은 규모에 따라 다른 설계기준을 적용합니다. 하수관로는 10년~30년의 치수계획에 맞춰 설계되고, 빗물펌프장은 30년~50년에 맞춰 설계됩니다. 시설의 중요도와 비용 문제를 고려하여 빗물을 관리할 수 있는 양을 현실적인 선에서 타협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계속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과거의 30년과 앞으로의 30년이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집중호우는 더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지요.

2020년 환경부의 '기후변화 대응 홍수대책'에 따르면 2050년 홍수량은 평균 11.8% 늘어날 전망이고, 유역에 따라서는 최대 50.4%나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또 현재 100년에 한 번 범람하게끔 설계된 댐과 하천제방 등이 지점에 따라서 3~4년에 한 번 범람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올해도 유럽,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 전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독일 뮌헨재보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가 자연재해로 입은 손실은 650억 달러(약 85조 1800억 원)에 달합니다. 이제 이상기후 현상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이 아니라, '위협적인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치수계획이란?

= water control project

'다스릴 치治'에, '물 수水'자를 써요. 즉, 물을 다스리는 계획이라는 뜻이에요.

우리나라처럼 계절마다 강우량이 큰 폭으로 변화하는 지역은 필요한 수자원을 어떻게 관리할지,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을 어떻게 대비할지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적응해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요?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은 모두 '기후변화 적응(Climate change adaptation)'이라는 용어 아래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유엔환경계획은 전세계 50개국 이상에서 75개 이상의 기후 변화 적응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고, 네덜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도 변화하는 기후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적응은 단순히 둑을 높이는 수준의 물리적인 대책뿐만 아니라, 관련 기금을 조성하고 국민 교육 수준을 높이는 등의 사회경제적 대책까지도 포괄합니다. 기후변화는 사회경제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로 가뭄이 빈번하게 발생하면 농업생산량은 줄어듭니다. 1차적으로는 농민들의 생계가 불안정해지고, 더 나아가 식량안보 문제가 발생하게 되기도 합니다. 또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생활물가가 상승하게 되면서 저소득층의 생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안보, 복지문제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에 마냥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11년부터 5년 단위로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수립해 실시하고 있고,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라는 연구기관을 둬 정책개발과 이행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도 나름의 기후적응 대책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부산시는 지난 4월 해수면 상승으로 주거공간이 사라질 것에 대비해 '해상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호우 피해 사태에서 보듯, 이런 '적응대책'들이 완벽하진 못합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는 경우도 있고, 예산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서울시의 경우 포장도로의 비중이 높아 비가 땅에 스며들지 못하는 정도인 '불투수율'이 2020년 기준 52%에 달합니다. 아스팔트 비율이 높은 도심은 86%에 달하기도 합니다. 노후화된 빗물받이, 부족한 저류조 등도 이번 물난리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한편, 서울시는 2011년 수해 피해 방지를 위해 7개의 빗물터널을 계획했지만 예산문제로 그 중 하나만 양천구에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해 예방을 위해 빗물터널 건설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1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애초에 지반이 약하거나 지하시설이 많아 터널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강남에 설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결국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선 도시의 물리적인 구조를 체계적으로 재설계하는 수준의 큰 변화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비용을 확보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필요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을까요? 이번 집중호우는 그 첫 시험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