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온실가스 책임이 4800조?!

전세계가 지구온난화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날씨가 좀 더 더워지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농작물의 생산과 식량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영토 문제, 이상기후로 인한 질병과 생태계 파괴 등으로 우리 삶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합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고 있는 섬나라 투발루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복구에 필요한 비용은 누가 지불해야 할까요?💰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해결한다"라는 이상적인 문장을 현실의 영역으로 끌고 오면, 우리는 결국 "책임소재"를 따지는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누가 더 많이 잘못했냐는거죠.

네가 더 잘못했잖아!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한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온실가스라면,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한 국가가 기후변화에 더 많은 책임이 있겠지요. 더 나아가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를 지원하고 피해를 복구할 책임도 있을겁니다.

문제는 이들 국가가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특히 법적으로 잘잘못을 따지려면 "상대방의 잘못으로 내가 이만큼 손해를 봤다!"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기후변화 피해에 책임을 져야 할 국가들이 "우리나라 잘못이 아니라 다른 나라 잘못일수도 있잖아!"라고 반박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죠.

'무지를 핑계삼은 책임 회피'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결국 과학적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특정 국가에서 배출한 온실가스가 다른 국가의 기후변화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그 국가의 경제에는 얼마나 피해를 입혔는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지난 12일, 다트머스 대학의 연구진이 학술지 <Climate Change>에 발표한 논문 <National attribution of historical climate damages(역사적 기후 피해의 국가별 귀속)>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인과관계의 '고리'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의 국가별 책임을 따지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두 가지 인과관계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 다른 나라 온난화를 야기했다.
그 온난화 때문에 ➡️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이 두 인과관계를 엮으면 "한 나라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다른 나라가 피해를 입었다"를 증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 두 문제를 따로 다루어 왔습니다. 세부적인 방법론의 차이도 있었고, 각 문제의 분석 대상도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별 기여도 : 이건 보통 전세계 평균 기후변화를 연구 대상으로 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효과 분석 : 반면 이 문제는 대개 한 지역이나 국가를 대상으로 이루어져왔지요.

연구마다 분석의 방식도, 분석의 대상도 모두 다르기에, 단순히 서로 다른 연구의 결과를 합치는 방식으로는 기후 변화 피해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 인과관계를 증명해가는 각 단계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는 점도 문제입니다. 기후 문제를 분석하는 것은 대기/해양/지면 등 기후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방정식으로 단순화시킨 '모델'을 필요로 합니다. 현실의 모든 변수를 분석할 수는 없어 일정 부분은 가정에 기반하다보니, 인과관계를 분석할때 '불확실성'을 내포하는 것이지요. 기후변화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불확실성을 갖고 있는 두 문제를 엮어서 생각하자니, 불확실성이 훨씬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탄소-기후 모델(Simple Carbon-Climate Model)을 활용해 국가별 전세계 평균 표면 온도 상승에 대한 기여도를 계산하고,
이 결과를 가지고 다시 세계 기후 모델(Global Climate Model)을 활용해 국가별 기후변화를 계산한 뒤,
이를 바탕으로 기온 변화에 따른 경제적인 효과를 계산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런 방식으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피해를 야기한 2백만가지의 경우의 수를 구했고, 이 값들의 분포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즉, "너희 나라 때문에 우리나라가 손해봤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준 셈이죠.

분석 결과는 어떨까?

🇺🇸미국은 전세계에 1조 9000억 달러(약 2500조 원)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중국은 1조 8000억 달러(약 2300조 원) 규모의 피해를 입혔고,

🇷🇺러시아는 9860억 달러(약 1300조 원),

🇮🇳인도는 8090억 달러(약 1000조 원),

🇧🇷브라질은 580억 달러(약 76조 원)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배출 상위 10개국이 전체 피해의 67%를 유발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볼까요?

🇺🇸미국이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배출한 온실가스는 전 세계 기온을 0.054도 올렸습니다. 세부적으로, 🇮🇩인도네시아의 기온은 미국으로 인해 0.04도 올랐습니다. 이 수치가 작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더운 열대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약간의 기온 상승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인도네시아에 1240억 달러(약 164조 원)의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또, 🇵🇭필리핀은 340억 달러(약 46조 원)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한 선진국은 그 영향으로 이득을 보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은 오염 배출 등을 통해 1830억 달러(약 242조 원)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한국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한 손실보다 이익을 더 많이 얻은 나라로 분류됩니다.

연구 결과는 기후 변화에 책임이 있는 국가는 도리어 이익을 취하고,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비교적 적은 국가는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불평등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 기후 불평등은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이제야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손실과 피해, 그리고 기후 정의

지난 20년간 전세계 40억명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았고, 재난으로 인해 3800조원 이상의 피해액이 발생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예방·최소화 하고 복구하는 문제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L&D)'라는 용어를 통해 다루어져 왔습니다.

기후 변화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이 문제를 독립적인 의제로 다루길 원합니다. 즉, 해당 문제를 다루는 별도 기구와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이를 '기후 변화 적응(Climate Change Adaptation)'의 세부 항목으로 다루어도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손실과 피해'를 논하기 시작하면, 금전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들 선진국은 "'기후 변화 적응'을 하면 '손실과 피해'도 줄어들잖아요?"라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물론 이 두 문제에 있어 겹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닌 부분도 분명 존재합니다. 기후 변화 적응이 손실과 피해를 예방하는 효과는 있을지라도, 이미 발생한 피해를 복구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로 토양이 황폐화되었다면, 대책을 세우기 위해 정확한 피해 규모 산정이 필요하지만, '기후변화 적응'에 편성된 예산으로는 그런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은 두 문제를 별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손실과 피해'에 대한 합의된 정의조차 없는 상태로, 현상 파악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연구는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액을 과학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방법론을 마련함으로써, '손실과 피해' 문제에 소극적인 선진국들을 압박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아있는 문제

그러나 과학이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들이 남아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1990년대부터의 온실가스 배출 자료를 기준으로 피해액을 산정했지만, 1960년대 자료부터 활용하면 유럽 국가들의 책임은 더 커집니다.

또 국가 전체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1인당 배출량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에는, 인도나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국가들에 기후변화의 책임을 묻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과학은 정해진 기준을 바탕으로 계산을 수행할 수는 있지만,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여전히 정치의 역할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