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과 피해 :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질문

지난 주, 전세계 193개국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로 '유엔총회'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 위기까지... 하나만 다루기도 벅찬 문제들이 인류 앞에 잔뜩 쌓여 있는 만큼, 올해 유엔총회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기후 위기 문제 또한 올해 유엔총회의 주된 의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의 기후 위기 논의 양상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있었어요. 그간 선진국들에 의해 철저히 외면받아왔던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직접적인 배경에는 최근 벌어진 파키스탄의 대홍수가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도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해 큰 홍수 피해를 입었고, 300억 달러(약 40조 원)의 복구 비용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배출에 저위도 개발도상국들이 피해를 입는 기후 불평등의 본질이 명백히 드러난 것입니다.

"횡재세로 기후 재난 피해 국가를 돕자!"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것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기조 연설이었습니다. 전 세계 선진국들에 '횡재세(Windfall Tax)'를 도입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횡재세란? : 에너지 기업들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얻은 초과 이익에 대해 걷는 세금을 뜻해요. 최근 화석연료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큰 수익을 얻고 있는데, 이들 기업들이 얻는 초과 이익에 세금을 물려 에너지 가격을 낮추자는 것이 횡재세 논의가 시작된 배경입니다. 유럽연합은 이미 화석연료 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구테흐스 총장도 유엔총회 기조 연설에서 에너지 기업들을 향해

👴: 지구가 불타오르는 동안 보조금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천억 달러의 돈방석에 앉았다!

라며 횡재세 도입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들이 지구를 오염시킨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죠.

정제된 언어가 오가는 국제 외교 무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거친 표현이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로 눈길을 끈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주목을 받은 부분은,

👴: 횡재세로 거둬들인 돈을 기후 위기 피해가 심각한 나라들과, 식량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자!

라는 발언이었습니다. 즉, '손실과 피해'에 따른 비용을 마련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죠. 그간 선진국들은 '손실과 피해' 보상 비용을 치르겠다는 말만 했지, 구체적인 비용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왔습니다. 구테흐스 총장의 발언은 '손실과 피해' 관련 논의를 한 단계 진척시킨 셈이죠.

첫 '손실과 피해' 보상 - 덴마크

한편 선진국 중 최초로 '손실과 피해'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국가가 나왔습니다. 바로 '덴마크'입니다. 덴마크는 1300만 달러(약 185억 원)규모의 기금을 '손실과 피해' 보상을 위해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련된 기금은 북서 아프리카의 사헬 지역과 다른 기후 위기 취약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될 예정입니다.

'1300만 달러'는 기후 위기 취약 국가들이 입은, 또 앞으로 입게 될 피해 규모에 비하면 한없이 작지만, 선진국 중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손실과 피해' 보상을 지불한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덴마크의 사례는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개발도상국들이 향후 다른 선진국들을 압박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 원전=친환경! 땅땅

정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의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원자력발전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될지의 여부가 뜨거운 감자였는데요, 그간 정부가 원전 확대를 공언해온 만큼 큰 이변 없이 포함된 내용이었습니다.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면 해당 사업이 '녹색 투자'로 인정받아 낮은 이율로 대출을 받는 등 여러 혜택을 받게 됩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크게 <녹색 부문>, <전환 부문>으로 구성됩니다. 환경부는 '원자력 연구개발'은 녹색부문에, '원전 신규 건설'과 '원전 계속 운전'은 전환 부문에 포함했습니다.

다만 원자력발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에 함께 제시했습니다.

원전 신규 건설의 경우엔 원전에 원자력안전법 등에 규정된 '최신기술기준'을 적용하도록 했습니다.
2031년부터 원전에 중대사고가 났을 때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게끔 했고요,
마지막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건설을 위한 세부계획과 이 계획의 실행을 담보하는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원전이 저탄소 발전원인만큼, 중·장기적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면서도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전 업계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원전에 적용된 기준들이 유럽 연합에 훨씬 못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유럽 연합은 '최신기술기준'이 아닌 '최적가용기술'(가능한 최신의 기술)을 적용하게끔 했습니다. 사고 저항성 핵연료의 사용 시점도 2025년으로 우리 기준보다 6년 이릅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엔 방폐장 가동 시점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유럽연합의 경우엔 2050년으로 시한이 정해져있습니다.